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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78): ‘사랑은 아무나 하나!’(2)


내리 사랑!’

그렇다. 누가  뭐래도 사랑은 애당초 내리사랑이다. 결혼하지 않은 어느 여인에게 결혼을 이야기하면서 흔히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을 고르라.’는 충고를 상식처럼 듣는 경우가 있다. 누가 들어도 꽤나 좋은 충고이고, 진정 사랑의 정곡을 찌른 말이다. 혹시 남녀가 아니라, 여남 동등을 부르짖는 마당에 쾌쾌 묵은 시대착오적인 말이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골라야지 무슨 소리야’,라고 거칠게 항의하는 비난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지만,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라는 노랫말처럼 좀 더 예뻐지려는 단순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겠지, 이렇게 가볍게 받아들이면서도 남녀관계에서 남자의 사랑이 먼저라는 사랑의 선후관계, 곧 내리사랑의 근본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라고 힘주어 말하는 소리가 내 귀에 크게 들려오지만, 그래도 내가 여자에게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는 말을 그냥 흘려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엔 그 선후가 염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내리 사랑이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원리 같은 것이다. 사랑의 선후를 다음의 일상에서 찾아보면 이해가 훨씬 빠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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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엔 공원에서 새끼를 데리고 다니며 돌봐주는 캐나다 거위들의 행렬을 자주 보게 된다. 그야말로 가족 사랑의 행렬이다. 거위 부부가 새끼들을 거느리고 풀밭을 거닐며 어린 것들에게 식사를 도와주고, 어미와 새끼들이 풀을 뜯는 동안 수놈은 고개를 치켜들고 주변을 살피며 그들을 보호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새끼들에게 수영을 연습시키고 나와서 차도를 건너가는 경우에도 새끼들을 조심스레 돌봐주는 사랑의 주체는 그들의 아비와 어미라는 걸 확인할 수가 있다. 왜 하필 거위들을 통해서 사랑을 말하려는 것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사람들 사이에선 사랑의 선후가 시도 때도 없이 바뀌지만, 동물들의 사랑이 사람의 사랑을 넘어섰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들은 지음을 받은 그대로 사랑의 선후가 자연스럽게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현실을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자연을 아직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르지만, 인간은 언제나 주인 노릇하려는 자신의 주체사상이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거나 무너뜨리기 일쑤가 아닌가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신 후에 그를 잠재우시고, 그의 갈비뼈로 여자를 지으신 후에 그 여인을 아담에게로 이끌어 주셨을 때, 아담의 입에서 나온 감탄의 말을 들어보자.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2:23).” 아담은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명명해서 사랑의 주체와 객체의 선후를 밝힌 걸 볼 수 있다. 남녀의 선후관계를 먼저 지음 받은 아담이 불변의 원리로 선언한 대목이다


먼저 지음 받은 자로서 뒤에 지음 받은 하와를 향한 아담의 선언이 곧 기쁨과 감사의 감탄사였다. 남자와 여자가 바로 한 사람이 된 순간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그 사랑의 음성을 받아들인 여자. 그들이 한 몸이 되었다는 선후관계를 분명히 인지한 아담의 감탄사가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남녀 부부로 이뤄진 가정에서 그 선후가 깨지거나 뒤틀리면 사랑의 선후가 깨지는 것이기에 온전한 가정을 이룰 수가 없다는 위험도 그 안에 내포돼 있다


결국 사랑의 원천적 구조가 남자에게서 여자에게로 내리사랑이라는 뜻이다. 우선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나는 사랑의 주인이 된다. 그 사랑의 책임이 주인에게 있다. 내가 특히 부족한 경우 다른 이의 사랑을 내리 받으면 되지만, 내가 사랑의 주인이 되어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과연 누구를 사랑할만한 자격이 있을까, 란 의문이 먼저이고, 나의 사랑이 누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두 번째이다. 내가 주인이 되어 쏟은 사랑은 대부분 부족하거나 실패로 끝난 경우가 많아 사랑의 주인 행세는 실로 어렵기 그지없다. 나 개인의 한계는 나의 사랑의 한계를 가져오고, 최선을 다했더라도 후회가 따르니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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