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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42): 하나님께선 왜 선악의 지식을 금하셨을까?

 

얼마 전 나는 성균관대학의 김정탁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가 중국의 사상가인 장자를 연구하고 장자라는 이름의 책 출간을 기념한 중앙일보의 인터뷰 기사였다. 인위적인 도덕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면서 정의도 마찬가지라는 그의 말이 퍽 인상적이었다. 누가 자신은 정의로운 사람이라든지, 혹은 어느 정권이 정의롭다고 주장하다 보면, ‘이미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결론지었다. 스스로 그런 100%의 정의를 찾기 위해선 누군가를 계속해서 공격하고 비판해야 하는데, 그런 행위는 결국 서로간의 균형을 무너뜨리면서, ‘그건 동그라미를 끝없이 깎는 형국이다.’라고 말했다. 순도 100%의 둥근 원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 깎다 보면 오히려 모가 나기 마련이라는 표현은 깊이 새겨들어도 괜찮을 금언이 아닐까 싶다. 소위 스스로 정의로운 척 정의를 찾는 그런 행위가 내겐 곧 남을 끝없이 공격하고 비판하면서 결국엔 동그라미, 아니 둥근 지구마저 사라지게 만든다는 위험의 경고로 들렸다


물론 오늘의 한국 사회를 거울로 비춰준 말이지만, 내가 오늘 펜을 든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선악의 평가, 혹은 의와 불의가 왜 서로 다른지, 그 이유가 어디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평가해 말할 적에 과연 어찌 표현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는가? ‘저는 죄인입니다. 긍휼히 여기소서.’라는 고백 외에 사람들에게 달리 표현할 말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고, 스스로 이것이 선하고 저것은 악이라 지적하며 스스로 하나님 노릇한다면, 선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서실 자리는 과연 어디이겠는가?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선악은 누가 정하는가? 백성인가, 왕인가? ‘왕이신 나의 하나님’, 이런 찬송을 불러놓고, 내가 선악의 주관자가 돼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선악을 결정한다면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선악의 지식은 깡그리 무시되고, 자신이 그 지식의 주인이 돼버린다는 사실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 입맛대로란 말이 가능한가?


원래 인간은 처음 지음 받았을 때 스스로 주인이 돼 자신을 포함해 누구든 평가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오직 그 한 가지를 금하셨다. 인간이 선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적에, 다시 말해서 첫 가정, 첫 부부 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선과 악이 드러나지 않았던 낙원 생활 중에 그들 부부에게 애당초 선악을 알지 못하도록 그 지식의 열매를 금하셨다. 인간이 선악의 지식을 취득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악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의 주인 노릇을 못하도록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죽음의 경고로 엄중히 금하신 것. 하지만,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하나된 걸 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악으로 그 지식을 습득했으니 인간의 선악의 지식은 그 지식 자체가 타락의 도구였기에 선악의 주인이신 하나님 외엔 누구도 선악을 바르게 판단할 수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타락한 인간의 자기중심적 판단이 하나님만이 아시는 만고의 옳고 그름을 어찌 구별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완전한 사람과 완전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조차 자신의 생각의 판단을 내세워  결정할 수 없다고 선언하셨고, 심지어 자신의 모든 옳고 그름의 일거수일투족, 심지어 장막절 축제를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시는 발걸음조차 형제들의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발길을 내딛으셨다(5:31-32;8:13-20). 

만약 사람들이 각자 자기 좋아하는 대로 선과 악을 스스로 구분하고 결정한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선악판단은 뒷전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결국 하나님을 로봇으로 만들고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최악의 사태가 도래한다. 물론 이미 그런 세상이지만 말이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건 결국 하나님의 선악의 판단에 자신을 맡기고 오직 주만 믿고 따르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입맛대로 골라서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간의 왕 노릇이기에 하나님 앞에선 결코 용납될 수가 없다<우영>.

 

No. Subject Author 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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