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원목사와 함께 목회하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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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직분론이랄까? 한번 이야기하려 했는데, 내친김에 지난주 장로이야기에 이어 집사와 권사이야기를 좀 더 드리겠습니다. 요즘에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장로, 집사, 권사를 합하여 중직자라 부르곤 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구역장, 기관장까지 그리 부르기도 하지만, 주로 3대 선출직을 중직자라 불렀습니다. 무겁고 소중할 중重, 직분과 직책의 직職이니, 이들에게 주어진 이름이 [소중]하고 [영광]스러울 뿐아니라, 남달리 무거운 [책임]이 주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내규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집사는 신앙과 생활이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당회의 감독하에 헌금 출납을 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유약한 사람들을 구제하며 돌아보는 사람들입니다. 권사는 신앙과 생활이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사람이며, 범사에 덕을 세우는 자입니다. 당회의 감독하에 교인들을 심방하며 가난한 자, 병자, 유약한 자를 구제하며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의 입장으로 말하자면, 집사 중에서 장로를 선출하고 있으니, 집사는 장로로 훈련되는 예비장로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모순같지만, 집사되면서부터, 장로의 마음, 장로의 시각, 장로의 헌신 등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권사는 성경적인 의미로 권면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하나님의 사역과 맥을 같이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권사는 슬프고 낙심된 사람들을 찾아 위로합니다. 마음 상한 사람들을 중재하여 화해시킵니다. 성도들을 대변하여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또한 바른 신앙으로 살아가라고 어머니 마음으로 권면합니다.

 

중직자들은 교회의 [선한 흐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각자 자리가, 선한 [흐름의 맥]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이 멈추는 벽이나 빠지는 구멍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오히려 멈춰선 흐름이라도 다시 일으키는 [선한 흐름의 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중직자는 자기 [존재의식]이 강하면 안됩니다. 마치 물 속 돌맹이와 같습니다. 내 자리 지키고 있는데, 물 위로 얼굴을 내밀면 물소리가 나고, 물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으면 소리나지 않습니다. 내가 있을 자리에서 내 몫을 다 하면 됩니다. 나 여기 있다고, 나 알아달라고, 고개를 내밀면 오히려 그게 [거침]이 되며, []을 끊습니다. 거기 있는 것을 사람들이 압니다. 수고하는 것을 압니다. 일부러 고개들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물론 아는 사람은 손 내밀어 함께 수고하고, 마음 열어 위로하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꼭 그래줘야 합니다. 그러나, 혹 그리하지 않을지라도 힘들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 직분을 주신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교회를 통하여 주십니다. 자리때문이 아닙니다. 할일(사명)이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능,] 혹은 [역할]이라 합니다. 그 기능 역할에 게으르면 어느날부터 직분의 이름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각종 구실로 피해다니고, 직분의 책임이 상실된 계급이나 명예로 전락합니다. 정말이지, 그리하면 안됩니다. 그리 아니되려면, 세우신 자리가 무엇, 어디이든지, 그곳에 굳게 자리잡고 서서, [본本]이 되고, [덕德]을 세우며, [하나님영광] 위하여, 자기 자리의 [기능]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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