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원목사와 함께 목회하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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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신학이라는 월간지가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목회영역과 신학의 영역을 이어주는 좋은 월간지입니다.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책을 대할 때 작은 짜증이 나고 있습니다. ‘광고때문입니다. 새벽기도용 생명의 삶에도 슬며시 광고가 많아졌습니다. 책값을 유지하려고 광고를 늘렸다 할지 모르지만, 광고투성이의 여성월간지들을 닮아가는 것 같아 괜히 심통이 납니다. ‘목회와 신학에는 도서와 신학교 안내도 있지만, 각종 세미나와 칸퍼런스 광고가 많습니다. 대상에 따라 연령, 성별, 전문성, 평신도, 목회자, 신학생 등으로 세분되기도 합니다. 세계의 석학들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유명한 세계인들이 특별한 경험을 간증하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활발합니다. 한국을 떠나온 지 22년되는 저에게 이런 세미나와 칸퍼런스 안내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배움의 기회가 집중적으로 주어진 것 때문입니다. 조금만 움직이면 많은 것을 배울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고급스럽고 다양한 배움의 기회가 많았으니 오늘의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훨씬 나아야 하는데, 정말 그런가 하는 회의감 때문입니다. 목회자나 성도, 기독교회적으로도 발전적진보가 나타나야 합니다. 양적부흥은 물론이요, 질적성숙도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평가도 그렇고 교계에서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니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자꾸 생각하지만 뚜렷한 답은 없습니다. 남이야기만 하는 것 아닙니다. 저 자신도 20년전, 혹은 10년 전에 비하여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뭘 잃어버렸으며, 뭘 얻었는지 자신을 돌아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쌀을 떡틀에 넣으면 떡이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쌀이 아니며 다양한 예배, 집회, 수련회, 세미나, 칸퍼런스 등은 떡틀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앉아있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헛배부른 사람처럼 배운대로 된 것 마냥 착각하면 안됩니다. 각종 자리에서 나에게 전달된 지식, 깨달은 내용, 받은 은혜, 결정적 도전 등은 내 문 앞에 와 있는 것 뿐입니다. 그것을 내 안으로 이끌어들이는 것은 자신이 할 일입니다. 또한 그것이 익숙해지기까지 내 안에서의 거부반응도 이겨내야 합니다. 마치 간이식수술 후 기존 면역체계가 이식된 간을 이물질로 생각하고 공격하듯, 그동안 다져온 사고, , 신앙 등의 내 안정된 스타일이 새로운 것을 공격합니다. ‘꼭 그래야하는가?’ 기본 질문에서부터 다른 사람은 안하는데,’ ‘시대가 이런데,’ ‘귀찮다등등 각종 언어로 [유익하지만 낯선 것]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늘 문 앞에 두고 내 안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알지 못한데 아는 것처럼, 하지 않는데 하는 것처럼, 능력 없이 모양만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문 앞에 있는 것은 내것이 아니며, 모양은 능력이 아닙니다. 훈련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훈련의 종착지점은 자기의 내면화입니다. 이것은 고독한 과정이자, 혹독한 단계입니다. 다시 새로운 것을 추구하여 문 앞에 데려다 놓으려 말고, 이미 내 문 앞에 있는 것들을 하나 둘 씩 안으로 이끌어들이고, 익숙해지도록 견디어 보십시오. 이 단계에서 신앙이 성숙하며,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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