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24): 시간과 영원, 부모는 자녀를 어디에 맡길 건가?

 

주님의 어린아이 사랑의 조건은 오직 한 가지이다. 마치 한 가정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다가가듯 주님께로 다가갈 때 그가 누구이든 연령에 상관없이 하나님께로 다가가는 자, 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어린아이이이다. 하나님의 어린아이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분명한 사실은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거듭남이 곧 어린아이가 되는 유일한 길이다.

사실 한 가정의 모든 식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들의 신분은 혈육 간의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르게 맺어진다. 모든 식구가 하나님을 동일하게 아버지로 부르는 영적 관계로 묶여지기 때문에 한 가정의 모든 식구가 하나님을 믿게 되면, 족보상의 신분이 달라지는 너무나도 것은 당연하다. 부모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자녀들이 하나님을 할아버지로 부르지 않고, 부모처럼 동일하게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모든 가족은 하나님의 각각 독립된 자녀라는 신분으로 동격이란 뜻이다. 자녀들의 신분이 부모를 닮아서 높아진 것이 아니라, 부모가 거듭남으로 자녀들을 닮아서 어린아이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라야 천국백성이라고 말씀하신 우리의 주님의 뜻은 영원히 변함없다.

어린아이의 제 자리는 분명히 그를 낳은 부모나 형제들인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그 상식이 깨뜨려지기를 바라신다. 어린아이가 되는 데는 두 가지 요소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 두 가지가 무엇일까? 육적인 면에선 아직 어려서 부모가 필요할지라도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필요를 안다면, 하나님께로 다가가도록 부모가 참신앙의 선배가 돼 주어야 한다. 교회의 신앙 교육을 위해서 자녀들을 주일학교에 데려가는 것은 부모보다는 자기 아이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다 소중히 여기도록 돕기 위한 부모의 의무이다. 그렇다면, 영적인 면에서, 혹은 마음에서 자기 자녀들을 주님께로 일찍 떠나보내는 일이야말로 부모들의 의무요 책임이 아닐까 싶다. 탕자의 비유에서 자기 자식이 부모를 떠나 자기 좋아하는 곳을 택해 부모와 집을 떠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자녀들이 언젠가는 부모와 집을 떠나 그가 독립한다는 사실을 실감해야 하지만, 그가 부모와 독립한 후에는 그가 진정 어디로 가야할지 부모는 그 방향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어야 한다. 자녀들을 부모의 기대에 맞추기보다는 하나님의 기대와 그 품에 맡기는 것만큼 지혜로운 결정은 없다. 부모들이 자녀를 아무리 오래 품고 사랑하고 싶어도 자녀들을 반드시 독립해서 집을 떠나게 돼 있다. 부모로부터의 자녀의 독립, 이것은 사회적 전통이나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자녀들의 독립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이다. 남자가 자신을 돕는 자, 여자 곧 아내와 합하여 독립된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주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가 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룰 것이니라(2:22-24).’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선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들을 아버지의 뜻에 맞춰 키우시지도, 사용치도 못하신다.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상처를 입히는 일다. 어차피 이 땅의 자녀들은 18세만 되면 부모를 떠나 대학입학으로 독립하게 돼 있는데, 왜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단 말인가? 과연 부모가 자녀를 돌볼 시간이 얼마나 길지 생각해 보자. 감히 하나님께서 돌보실 영원과 비교할 수 있을까? 시간뿐만 아니라, 그 영혼을 영원히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자녀를 맡기는 부모의 선택이 참 지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