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된 보름이 되었다. 다짐했던 신년결심이 한해 동안 지속되려면 지금이 점검하기에 적합한 때이다. 순간적인 계획은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되짚어봐야 하고, 감동적인 결심은 일시적 충동의 산물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만일 송구영신의 외형적 분위기 때문에 준비없이 해를 시작했다면, 이제라도 차분히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새해 계획은 지난 시간에 대한 자기 반성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성찰 없는 지난날의 반복이나 답습으로는 변화와 발전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자신이 기준되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입증하는 세월을 반복하기만하고, 폐쇄된 독선과 자화자찬의 자기 충만으로 살아갈텐데, 반성 없는 자리에 무슨 새로운 일이 시작되겠는가? 반성은 자기를 열어보는 것에서 시작하며, 열어보는 자리에 새로움이 싹튼다. 자신도 모르는 자기의 내면 세계가 있는데 그것을 직시할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의롭게 내세은 명분 뒤에 숨은 부끄러운 동기, 우연처럼 보이는 일회성 사건 뒤에 숨은 회색빛 자기논리를 찾아보아야 한다. 사람 앞에 자신의 모든 내면을 열어보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을 증인삼아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다 보면 된다. 하나님을 대화상대로 삼아,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면 된다. 충분히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새로운 시간을 시작하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좌충우돌 침범하기 쉽다. 반성 없는 확신이 위험한 것처럼, 성찰 없는 계획은 무모할 뿐이다.

 

새해 계획은 자기에게 합당한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반성이 소극적이라면 대안제시는 매우 적극적인 것이다. 대안 없는 성찰은 진전 없는 행진같아서, 제자리 걸음에 에너지와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비난과 비판을 적용하여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비난과 비판은 크게 다르다. 비난은 근거도 주관적이거나 기준은 극히 자기중심적으로 가변적일 때가 많고, 합리적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기만한다. 그러나 비판은 다르다, 객관적이며 확고한 논리적 근거가 있고, 그에서 비롯한 발전적 대안을 제시할 있다. 비난은 상대를 손가락질하는 파괴적 감정 수준에 머무르지만, 비판은 그렇게 원인을 찾아 바른 길을 찾아가도록 협력하는 건설적 의지 수준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제대로 반성이나 성찰은 자기비난과 자기지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찌할 것인가?’ 수백번 묻고 자기에게 가장 합당한 대안을 찾아준다. 그러므로 새로운 해의 계획은 지난 해의 치열한 성찰과 반성에서 비롯된 가장 최신의 대안이며, 자기가 자기를 돕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이어야 한다.     

 

새해 계획은 가능한 공동체적이어야 한다. 일상에서 쉽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다가도 자리 잡고 날의 계획을 세우다보면 자기가 중심되는 것이 인간이다. 자기가 중심이 자아성찰은 일방적인 이기적 자아로 드라이브해 간다.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할수록 공동체중심의 자아 성찰과 공동체 중심의 대안이 필요하다. 지극히 사소한 개인적인 것일지라도 공동체적 조망하에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 이기적 대안들은 타인에게 피해주기 쉽다. 자기 소신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면 소신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치는 많건만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성경적 개념 - 상생과 공존 - 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어도, 배려 차원에서라도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어야 한다. 화폭에 담긴 그림의 아름다움이 단순한 점과 선들의 조합에서 시작됨을 생각할 때에, 이기주의로 흐르는 현대사회에서는 사람 사람 점과 자체의 가치보다, 연결된 공동체로서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해내야한다. 해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공동체의 것이다.   

 

시간은 꼬리 길게 달린 연과 같다. 나를 향해 때는 그저 시간일 뿐이지만, 뒤에는 살아간 흔적의 꼬리로 남는다. 다가오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만, 남긴 흔적은 다르다. 다른 생각과 다른 자세와 다른 생활 양식을 가진 서로 다른 오늘의 통과하기 때문이다. 남기기 위해 시작해야 하며, 이미 시작한 것들을 반복 점검하여야 것이다. 보름이 지나가지만, 아직 350여일 남았으니, 다시 힘차게 시작해보기를 바란다. 남길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