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저를 사역자로 세우고 전도사라 불러주신 분이 계십니다. 일찍부터 사명 깨닫고 그 [물]에서 놀라고 세워주신 어른 목사님이십니다. 덕분에, 43년간 그 [물]에서 놀고 있습니다. 고마운 어른이십니다. 그 분 만이 아닙니다. 제가 만난 어른들은 모두 고마운 분들입니다. 말 한 마디가 배움거리였고, 몸짓 하나에도 진리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일상이 목회였으며, 언행심사가 목회자였습니다. 완벽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적으로는 어설픈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자 목사로 산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있었고, 배우고 따라가기에 충분했습니다. 생존해 계시는 분보다 이미 하나님 곁으로 가신 분들이 더 많은 지금, 어른의 발자취가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떠나 오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을 떠나 보냈습니다. 사역자들 말입니다. 신학생 사역자들은 공부를 마치면 어디론가 갈 준비를 합니다. 부목사로 들어온 사역자들은 담임목사 자리가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사역자들의 오가는 길은 언제나 안쓰럽기만 합니다. 언제부턴가는 더욱 그랬습니다. 어린 전도사, 어린 목사, 어린 선교사가 험한 십자가의 길 어떻게 걸어갈 수 있을까? 갈수록 목회환경이 어려워가는데, 주신 사명 어떻게 완수할까? 힘을 합해도 복음전파, 진리사수가 버거운데, 스스로 가벼워지는 교회들을 어떻게 이끌어갈까? 주님중심교회에서 자기중심교회로 전환하는 시대정신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모두가 형제자매이지만 때로 모두가 멀리있는 듯한 외로움은 어찌 견딜까? 날로 혼탁해가는 세상문화 속에 어떻게 하나님나라 컨텐츠를 심어나갈까? 놀기 좋아하는 나이에 어떻게 경건을 훈련하며 어떻게 실력을 키워갈 것인가? 사소한 일로도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사람 마음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길 것인가? 가시적 현실 비교에 급급한 세상에서 당당하게 좁은 길을 갈수는 있을까? 자기 중심성이 강한 세상에 어떻게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할까? 교회사랑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나  주님 때문에 당하는 수치는 어찌 견딜 것이며, 배고픔과 고독함은 어찌 견딜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이 안쓰럽게 만들지만,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은혜로 살며 목회하라 떠나보배곤 합니다. 성령과 말씀께 의탁하는 것 밖에 해줄일이 없습니다.  


뜻이 계셔서 내게 보내주신 줄 압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가르친 것 없고 보여준 본 없어서 늘 미안하기만 합니다. 그동안 함께 있었던 사역자들이 참 많습니다. 서울, 워싱턴, 뉴저지, 아리조나, 사우스케롤라이나, LA, 시카고, 세인트루이스, 아틀란다, 남미, 중국, 수원, 전주, 포항 등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담임목사, 선교사, 교수, 부사역자, 특별사역 등등 최선을 다해 수고하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아가 이제 그들이 또 다른 사역자들의 길을 안내해주는 [어른]으로 세워져가는 것이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짧게, 길게, 함께 있었던 동역자들이 새롭게 출발하는 아침에, 가까이에 있는 자들에 대한 어른역할이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