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서 나온 여름은 3개월입니다. 6월에 시작하여 8월이면 여름의 길었던 해가 드러눕습니다. 그 때쯤이면 유난히 무더웠고, 얼마뒤엔 어김없이 풍성한 느낌의 가을이 오곤 했습니다. 서울에서의 가난한 여름날들은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 같은 것이었으며, 시카고 여름은 유난히 긴 겨울의 역설적인 짝이었습니다. 일관성 있게 무엇을 하기에는 서로 다른 두 계절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웠습니다. 봄 가을이라도 길었더라면 자연스레 이어지는 부드러움이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여름이 길어졌습니다. 무덥고 뜨거운 계절 ‘썸머’가 길어졌단 말이 아닙니다. 베케이션이라 이름하는 휴가가 길고 많아졌습니다. 경기가 좋아졌다거나 삶의 질이 나아졌다는 것도 의미하겠지만, 행복이라는 그림이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자기계발서가 서점가를 연이어 강타하는 시절에, 여행은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전위부대 같아 보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고생만하던 한인들이 쉬고 여행가며 즐기는 모습은 보고듣기만 해도 좋습니다. 이루지도 못하면서 아메리칸드림물결에서 헤아나오지 못했던 삶의 자리에, 쉼이라는 여백을 조금 누리게 되었으니 감사할수 밖에요. 조촐한 소가족의 나들이부터 몇 년간 벼르던 큰 여행, 예정에 없던 갑작스런 움직임 등이 마음에 여백을 만들어줍니다. 여백이란 아무것도 없는 단순한 ‘빈것’이 아니며, 이것과 저것 사이의 ‘틈’도 아닙니다. 여백은 다른 것을 충만케 하는 또 하나의 힘입니다. 우리의 여름이 이런 ’여백’이자 ‘힘’으로 성큼 다가섰으니 반가운 일입니다. 

다른 여름이 있습니다. 인생과 신앙의 [휴지기] 여름입니다. 일반적인 ‘여름’이미지는 짙은 푸르름과 활발한 야외 움직임입니다. 하지만, 시카고 여름은 [집중하지 못하는 불연속성의 계절], 썸머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멈추고있는시간]입니다. 긍정적으로, 새출발의 의미 발견 시간이요 폭풍전야의 깊은 정적이기도 하겠지만, 부정적으로는 방향 잃은 쉼이 ‘주저앉은’ 기간이자 가을없는 여름이기도 합니다. 정치나 경제가 자주, 길게, 주저앉으면 그것이 정상적인 싸이클처럼 되기 쉬운데, 사실은 좋은 쉼을 컨트롤 못해 주저 앉은 것이며, 꼭 필요한 여백을 다스리지 못해 일어설 힘이 약해진 것입니다. 휴지기의 양면과 같습니다. 

지금은 모든 여름을 마칠 때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갔으니 쉼과 휴가의 썸머는 끝났고, 어쩌다 마음 놓았던 일과 사람에 대해서도 이제 ‘유지기’를 마쳐야겠습니다. 주의 목전에서 성경읽고 기도하며, 목자와 목원이 함께 목장을 돌아보고, 부부간에 일상의 추억을 부지런히 쌓아야겠습니다. 내면의 거친 돌을 주어내고, 주어진 시간 속에 사람을 사랑하며, 세우신 내 자리에서 몸된 교회를 잘 가꾸어야겠습니다. ‘때를 분별하는 성숙한 지혜’가, 짧은 가을을 맞이할 우리 모두의 간절한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이틀만 더 따뜻한 햇빛을 더 달라거나, 기도하고 사랑하며 홀로 있게 해달라던 시인들의 언어가, 제법 무게있게 다가옵니다. 그러니 이제 여름은 보내버립시다.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