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입니다. 한국 어느 교회의 열명이 넘는 학생들이 우리 교회에 왔습니다. 몇 주간 머무르며 함께 예배드리고, 여름학교에 참여했습니다. 시내를 구경하고 타주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한 달 가까이 머물렀던 미국방문을 그들을 ‘비전트립’이라 불렀습니다. 아이들의 견문을 넓혀준다는 뜻에서 시도 되었고, 해마다 미국 여러 도시들과, 유럽 여러 국가들을 방문합니다. 사실 비전트립이라는 이름은 선교에 먼저 사용되었습니다. 선교에 뜻을 둔 사람이 특정 지역을 방문할 때, 선교를 배우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현장을 맛보게 할 때, 그리고 지역 교회가 선교전략지역을 정하고, 점검 차 가보는 일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기존 비전을 확인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비전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름인 셈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땅에서는 ‘캠퍼스트립’이 있습니다. 장차 아이들이 가면 좋겠다는 대학을 둘러보거나, 내년이면 가야할 자녀들, 그리고 이미 정한 대학을 가보는 것까지 포함하여 폭넓게 ‘캠퍼스트립’이라 부릅니다. 부모와 함께, 혹은 몇몇 가정이 가족여행차 다녀오거나, 심지어 여행사 상품으로 나와 있기도 합니다. 넓은 캠퍼스를 걸어보고, 재학생의 활기찬 안내를 따라 다니기도 하며, 매점에 들려 학교로고가 달린 옷을 사 입고, 근처 식당에서 그럴듯한 기분을 내보기도 합니다. 아직 때가 안 된 아이들에게는 대학에 대한 꿈을 심어주고, 이미 정한 자녀들에게는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기회입니다. 이외에도 트립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부르는 다양한 외출들이 있기도 합니다.


살면서 미리 맛보고 결정하는 일들이 제법 있습니다. 코스코나 풋코트에서 음식 샘플을 주는 시식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자동차를 사기전에 시승을 해봅니다. 시연회, 시음회, 시사회 등도 그렇고, 맞선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부모가 정한대로 혼인하던 옛 시절과 달리, 그래도 어떤 사람인지도 보아 알고 살자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다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 미리 먹고, 앞서 다녀오며, 먼저 살펴보고, 한번이라도 더 만나보자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일들이 더 많습니다. 아이를 키워보고 낳겠습니까? 집을 살아보고 구입하겠습니까? 자격증을 따보고 직업을 정하겠습니까? 많은 물건의 구매나 많은 대인관계도 그렇습니다. 결정적으로 [인생트립]이란 없습니다. 살아가는 것이지 뒤돌아 다시 살지 못합니다. 살아보고 나서 어떤 시절을 다시 살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앞으로 나가갈 뿐이며, 나의 story는 같은 속도로 쓰여집니다. 그래서 정신 차려야 합니다. 자칫 광야를 맴돌게 되고, 자칫 후회로 가득한 시간이 되며, 자칫 상처만 남길 수 있습니다. 내가 미리 해 볼 수 없는 것이면, 미리 해 본 전문가를 의지하면 됩니다. 몇 번 해 본 전문가 보다 만든 전문가를 더욱 신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돈의 시대에, 갈 길 모르는 어린아이 심정으로, ‘내 손 잡고 가소서’ 창조주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뿐입니다.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