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關心]은 참 좋습니다.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이거나, 마음으로 끈을 잇는 일입니다. 사람 향한 관심에는 내가 주는 관심이 있고, 내가 받는 관심이 있습니다. 전자를 ‘주는관심’이라 하고 후자를 ‘받는관심’이라 해봅시다. 우리에게는 어느 것이 더 많을까요? 아, 정치인이나 경제인, 혹은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처럼 멀리 있는 사람들 말고, 말이나 표정 행동으로 삶과 뜻을 직접적으로 주고 받는 사람들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주는관심’보다 ‘받는관심’이 훨씬 많습니다. 특히 받는 관심을 좀 더 구분해면 더욱 그렇습니다. ‘받는관심’은 현재 내가 받고 있는 관심과 지금은 아니지만 누구에게서 받고 싶은 관심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받고 있는 관심은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관심을 베푸는 자의 수고가 얼마나 큰 자기희생과 절제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관심은 영원한 큰 사랑이건만, 자녀세대들은 그 가치를 잘 모른채 소중한 시간을 흘러보내기만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누구나 관심을 받고 싶어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마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관심이 그 사람의 마음이고, 그 마음은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에 관심받고 싶은 마음은 잘못이 아닙니다. 관심받고싶은 것은 결국 다양한 얼굴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누군가 나에게 선물을 주며, 누군가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누군가 내 말을 따라주는 것은 기분 좋은 ‘사랑’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관심을 주고 받는 것은, 부부, 자녀, 가족, 직원, 교우 등 모든 대인관계에서 상호발전을 이루는 핵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어릴 때는 ‘어리기때문에’ 당연히 관심을 받습니다. 넘어질까, 쓰러질까, 먹어라, 입어라,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커가면서 달라집니다. 나이 때문에 오는 관심은 자연스레 줄어들고,  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 때문에 관심이 늘어납니다. 어른이 되면 마땅히 성숙한 어른다움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 다른 사람의 관심,이목을 집중시키고, 공동체와 시대를 움직이는 선한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문제는 어린아이와 어른 사이에 있는 때(사람)입니다. 관심은 받고 싶은데, 아직 성숙하지 못한겁니다. 자연스러운 관심을 받기는 어려우니 본능적인 억지가 나타납니다. 모두 뛰어노는데 한쪽 구석에서 앉아 있는 아이를 보고, ‘무슨 일 있어요? 어디 아파요?’ 물어보면, 그 부모가 대답합니다. ‘에이 아프기는요, 관심받고 싶어서 그래요~~~’  때로는 아이들의 선행, 공부, 심지어 교회생활까지도 관심받고 싶어하는 외적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어른되는 과정이니 이미 어른된 자들이 도와줄 것이며, 때가 되어 어른되면 억지는 없어지고 자연스러움이 남을 것입니다.  

우리는 몸 나이로 어른입니다. 영혼의 나이로도 어른이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관심을 베풀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받으며 삽시다.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주안에서 서로 사랑받으며 사는거지요. 무관심보다 관심이 좋은 것은 관심이 사랑이기 때문이며, 억지보다 자연스러움이 좋은 것은 관심과 사랑은 본질상 무겁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서로 짐을 져주는 중에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합시다. …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