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앙, 인생에 있어 무엇인가 강조하며 삽니다. 맛과 멋, 좋음과 나쁨, 넓음과 좁음을 비롯하여 경험과 계획, 사상과 이론 등 많은 것을 강조합니다. [강조]란 다른 사람들에게 강하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니, 바른 것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강조의 방법과 내용을 구분해야 합니다. 강조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특정  단어나 문자를 굵게 쓰거나, 괄호나 다른 기호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 톤을 다르게 하거나, 강한 표정의 몸짓으로 강조할 수 있습니다. 말을 반복하거나 때론 고요한 침묵으로 강조합니다. 색, 크기, 위치로 강조합니다. 강조의 방법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강조할지 내용이 먼저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도치 않은 것이 강조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강조하려는지 미리 파악해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 앞에 바른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강조 내용이 자꾸 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강조 내용이 자주 바뀌면, 내가 중요하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에게 소리지르는 엄마의 말에 일관성이 없으면, 아이는 엄마가 뭘 원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부모가 학교와 교회, 놀기와 예배, 성적과 인성, 바름과 처세 등에서 헤메이지 않아야 합니다.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것이 오래갑니다. 깊은 생각 끝에 나오지 않으면 강조나 주장이 환경따라 변합니다. 인간인 이상 변치 않을 수는 없지만, 일관성을 놓치면 자신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내가 뭘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지 잘 생각해 보세요. 
 

그런가하면 내 강조와 하나님의 강조 사이에서 방황치 말아야 합니다.  대부분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강조합니다. 자기가 전부인 자연인 경우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전부인 그리스도인입니다. 당연히 내 강조는 하나님의 강조에서 나와야 합니다. 순종과 제사는 내 맘대로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둘 다 중요합니다. 순종으로 산 인생이 드리는 제사여야 합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 그리고 정의와 자비와 신의는 선택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것이고, 겉과 속을 깨끗하게 하는 것 역시 선택이 아닙니다. 둘 다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를 희생하여 다른 하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취향과 의지에 따라 강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심에 따라야 합니다. 
 

교회생활도 그렇습니다. 목장, 전도, 선교, 예배, 찬양, 기도, 성경, 구제, 봉사, 교육, 예산 등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장 우선에 두고 강조하고 싶어합니다. 다 중요합니다. 다 강조되어야 합니다. 다만 [지금]이라는 시점에 더 마음을 끄는 것이 있고,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며, 더 챙겨야 하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강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성원 모두의 강조가 다르면 길을 잃기 쉬우니, 부모의 강조, 직장에서는 윗사람의 강조, 교회에서는 목회방향의 강조를 따르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동안, 어디서나, 어느 것이든 필요하면 강조하십시오. 기억할 것은, 우리의 모든 강조를 통해, 결국 드러내어야 하는 최종적인 강조는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