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했지만 생각치 않은 시간에 장모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서둘러 총 30시간 걸려 서울에 나갔습니다. 장례 및 장례후속 일정으로 인하여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며, 돌아올 시간과 돌아와 해야할 일정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25년 만에 크리스마스 시즌 중 다만 몇일이라도 한국에서 맞이한 것입니다.


다른 이유 때문에 왔지만, 그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보였습니다. 여기저기 화려한 전등의 크리스마스 츄리도 있었고, 각양 각색의 독특한 성탄 장식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뭔가 낯설었습니다. 어릴적 보던 성탄분위기가 없어서 그런가, 나이 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장례식 끝에 마음 자체가 무거워 그런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봐도 여전히 그랬습니다. 버스나 전철, 그리고 길거리 어느 곳에서도 찬양 섞인 크리스마스 캐럴은 들을 수 없었고, 구세군 종소리 뒤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에게서 온정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볼 수 없는 어느 곳에는 [크리스마스]가 있을거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성탄절이 즐거웠습니다. 구세주 오심이 너무 기쁘니 각종 행사를 통해 그것을 표현했습니다. 어느 순서 어느 역할에 참여하든지 저마다 동방박사가 되어 최선을 다해 사랑과 경배를 표했습니다. 물론 구세주 탄생이라는 본질적인 의미 외에 시즌 자체가 주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긴 겨울 방학이 시작했고, 연말연시의 조금 들뜬 분위기 같은 것 말입니다. 이처럼 성탄절에 느끼는 '섞인 감정' 이 어쩔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분위기, 어느 길이 성탄의 진정한 의미인지는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장례는 이미 하늘 가신 어머니, 육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가족이 모인 반가움도 있습니다. 25년간 이렇게 다 모인 적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 두 가지 감정 중 뭘 더 누려야할까요? 두 가지 다 자연스럽고 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장례의 본질보다 가족 재회의 반가움이 앞서면 아니될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와 사역의 관계도 그렇고, 사람을 대하는 수단과 목적에 대한 언급도 다 본질을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입니다.


성탄절이 그렇습니다. 모처럼의 휴일이며 연말 정서가 있지만,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성탄의 의미를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오심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우리도 그 사랑 나눠주는 시작이어야 합니다.] 이번 성탄의 계절에 우리 주님께 더욱 더 가까이 나아가며,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모든 것들을 잘 이어달리는 삶을 살아봅시다.[원]